“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https://yspc.org/wp-content/uploads/2021/03/2021-03-28web.pdf#page=8

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작년에 미네소타에서 불필요한 공권력 행사로 조지 플로이드가 죽었을 때 미 전역에서 Black Lives Matter 라는 인종 편견에 대항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몇몇 도시에서는 불법적인 폭동으로 번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아시안들은 그 사건을 우리와는 무관한 방관자의 자리에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근절 되었는가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모르고 또 그것을 들여다볼 수도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사회적으로 흑인들을 대놓고 무시하지 못하는 환경은 조성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고개를 들고 서서히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틀랜타에서 아시안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Stop Asian Hate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미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시안이라고 놀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도 겪는 일상입니다. 그러나 이민 1세들은 꾹 참아오던 우리의 문제들을 이제 2세와 3세들이 전면적으로 조직적으로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앞장섰고 정치권이 반응하면서 미디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 사건을 통해서 인종 편견을 뿌리 뽑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앞으로는 아시안들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못하는 환경만큼은 조성되지 않겠는가 기대해 봅니다. 미래에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미국의 환경은 피부 색깔이나 부모의 출신 지역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바램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종차별은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작년 폭동 때 어떤 목사님은 사석에서 “깜둥이들은 믿을만하지 못해.”라고 평소의 생각을 말했는데 저는 그분의 인격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다른 인종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도 있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더 낫다는 의식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런 대접을 받으면 못 견디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모습입니다. 아시안들을 향한 증오범죄를 규탄하기 전에 우리가 다른 인종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더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특히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을 삶의 터전에서 매일 연습해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성경의 황금률은 남보다 우리 자신을 먼저 볼 수 있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