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https://yspc.org/wp-content/uploads/2021/04/2021-04-04web.pdf#page=8

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죽음 이후의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미화시키려고 합니다. 묘지를 화려하게 만들고 온갖 장식으로 치장합니다. 힌두교나 불교는 고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 차려서 묘지에 갖다 놓는 모습도 있습니다. 고인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삶에 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묘지를 아름답고 깨끗한 장소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남미와 필리핀에서는 일 년에 한번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 있는데 가족들이 묘지에 모셔서 밤새워 먹고 마시면서 죽은 자와 영적인 소통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죽음은 아무리 아름답게 묘사하고 치장해도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이별은 인간이 겪는 환란 가운데 가장 큰 시련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 같습니까? 기분나쁘다고하고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답변을 들을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이것이 현실이고 확실한 것임에도 자꾸 피하려 합니다. 성경은 죽음이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온 죄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추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질병과 재난과 죽음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필연적인 삶의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고 출생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유쾌하지 않은 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죽음 아래 종노릇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아버님의 소천으로 잠시 마음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만일 죽음이 끝이라면 우리는 아무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음이 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라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친히 부활하시고 “첫 열매”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부활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활에 대하여 믿기를 주저합니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고 과학적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부활은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자기가 부활이고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은 나는 곧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고 주관하며 죽은 자를 살려내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주관자이시며 생명을 다시 살리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죽음 아래 있는 인간들에게 죽음에서 해방된다는 부활의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