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여호와께 돌아가자

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여호와께 돌아가자”란 표어로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는 일은 그냥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의도와 반대로 갈 때 영적인 문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복잡해지고 더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회복됨과 동시에 삶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회개 운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끼치는 영향이 아주 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의 근본은 영적 나태와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 침략도 많이 받았고 다른 민족아래 신음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회개하고 여호와께 범죄한 것을 고백하고 나면 영적 회복만이 아닌 삶의 평안도 되찾게 된 것입니다.

19세기 네덜란드에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목사요 교육 전문가로서 나라 전체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대학을 세우고 총장으로 학생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더니 후에 네덜란드 총리가 되어 잘못된 제도를 바꾸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그는 교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인정해야 한다고 국민들을 가르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나라의 주된 영역에서 말씀을 기반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때 이후로 네덜란드는 세계 전역에 많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막연하게 "여호와께 돌아가자"가 되면 안 됩니다. 기도는 구체적일 때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회복은 나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되어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내 삶의 패턴도 바꿔야 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바꿔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들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도 병행해야 합니다. 가정, 일터, 친구, 사업 거래처 등 모든 분야에서 회복이 이뤄질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복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계속 삶의 모든 영역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다시 뒤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회복은 한두 번 눈물의 회개로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계속적인 기도와 말씀의 적용으로 거룩하게 되어 주변에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보여주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회복; 여호와께 돌아가자”

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성도 여러분, 신년에 기도 계획을 짜고 계시나요? 많은 사람은 신년이 되어서 사업 계획을 짜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계획을 짜기도 합니다. 공부 계획, 새로운 기술 습득 계획이나 건강을 위한 운동계획 등등 포부를 가지고 신년을 시작하려는 것은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로서 기도에 대하여 계획이 없다면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이 밀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로서 성도님들께 신년에 기도 계획을 세우도록 도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는 자투리 시간이나 짬을 내서 하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면 내년에도 쫓기듯 살아갈 확률이 높아집니다. 기도의 계획이 없다면 내년에도 대충 기도하다가 또 허탈해지고 포기하고 넘어짐의 반복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기초가 되고 순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새해에는 신년 특별 새벽 기도회가 한 주간 진행됩니다. 주제는 “회복; 여호와께 돌아가자” 입니다. 이때 한 주를 결심하고 하나님께 드리게 되면 일 년을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아니, 한 주간만 특별히 열심을 내는 기간이 아니라 기도의 틀을 잡아서 그 열정이 지속되도록 기도의 습관이 자리잡히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의 탁월함은 잠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지속하는데 있습니다. 기도를 의식적으로 계획하여 삶의 우선순위에 놓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은 우리의 삶에 굴곡 없는 평안함을 주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이 변합니다. 깨어진 관계도 회복되며 불가능하게 보였던 상황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 되었을 때 다른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는 것은 기도하는 삶에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무절제한 삶의 패턴을 바꾸고 하루의 시간 관리를 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과의 연결에서 나옵니다. TV와 드라마 볼 것 다 보고 야식 먹으면서 늦게 자는 습관이 서서히 고쳐지고 오락 생활을 절제 있게 관리하게 됩니다. 내 영혼을 유혹하는 비본질적인 것을 제거할 수 있는 마음도 성령께서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겨낼 수가 없고 하나님과 연결될 때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이겨냅니다. 내년에는 여러 가지 계획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계획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고 그것을 꾸준하게 실행하여 삶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맛볼 수 있는 영생의 가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역

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선교지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을 간접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서구 사회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지역과 달리 무슬림들이 다수인 곳에서는 성탄 장식이 전혀 없거나, 쇼핑몰에서 서구 사회를 흉내만 낸 정도입니다. 물론,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예배당이나 신학교 안에서도 장식은 하지만 성도들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 이상은 못합니다. 따듯한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예배당으로 향하는 일에 익숙했던 저희들은 더운 날씨에 성탄을 지내야 하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날씨는 덥지만 분위기는 싸늘한 성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처음부터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무슬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회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누군가 신앙에 관하여 물어올 때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알리는 것은 합법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말구유와 아기 예수, 목자들과 천사들의 경배하는 인형 장식을 해 놓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보고 무슨 의미인지 물어볼 때 복음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의외로 이런 장식들을 처음 접하는 무슬림들이 많고 그들에게 설명하면 관심 있게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설명하는 복음 제시는 제법 좋은 선교 전략에 속합니다. 제 동역자는 한술 더 떠서 부활절이 다가오면 빈 무덤을 장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왜 빈 무덤인지 많이 궁금해했습니다.

최근에 세계 많은 국가들의 무슬림들 중 많은 개종자가 나오고 있다는 로잔 위원회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모로코, 튀니지, 레바논, 이란, 키르키즈스탄 등등 이슬람교가 여전히 강한 영향을 주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하여 사회가 불안하고 미래 환경에 대한 불신과 혼란스런 상황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의 영혼에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또 이미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이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올해 성탄절에도 환경으로 인하여 마음이 답답하여 인생의 답을 찾고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이 흘러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보다 더 큰 예수님을 만나는 귀한 일들에 영생교회가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복” 을 아십니까?

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동남아나 인도네시아는 일년에 두개의 계절만 있습니다. 우기와 건기는 일 년에 각기 특색있고 변화를 주는 계절입니다. 건기때는 말 그대로 비가 오지 않아서 말라있는 시절이고 항상 물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우기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반년 동안은 매일 비가 옵니다. 물론, 하루종일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한 두 차례 강한 폭우가 쏟아지기에 우기가 오기 전에 지붕을 손보는 것은 매년 연례행사와 같이 아주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한번은 제가 책임을 맡고 있던 신학교 산하, 선교 훈련원의 지붕을 손보던 훈련생이 저에게 달려와 지붕 처마 밑에 새 둥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지붕에 이물질을 치우고 새로 페인트를 칠하려면 둥지를 치워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미 새가 근처에 있는가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삐약하고 울어대는 새끼들을 구슬리며 새 둥지를 떼어서 건물 뒤쪽 나무의 나뭇가지 사이에 옮겨 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에 어미 새가 둥지가 있던 곳에 와서 화난 듯이 날갯짓을 하면서 서글프게 울어댑니다. 그때 저는 그 새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리 와 봐. 내가 네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 아무리 손짓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혹시나 해서 인도네시아 말로 해봅니다. “Ayo, ikuti saya, akan menunjukan kemana bayikunnya” 그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영어로도 말해봅니다. “Hey, come follow me, I will show you where your babies are.” 여전히 소통이 안 됩니다. 그때 제가 들었던 생각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잠시 새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그냥 하늘에서만 하지 않았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어 소통이 막힌 죄인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심으로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바로 “임마누엘의 복”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탄생을 “성육신” 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구체적이고 실제적입니다. 우리의 이웃 사랑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아니면 잠시 시간 내서 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행동이 뒤따라야 하고 내 중심적이 아닌 그들의 마음에 닿도록 하는 사랑입니다. 올해 성탄절의 사랑 표현이 이런 성육신적인 사랑의 모습을 흉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생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많은 곳에 전달되는 2021년이 되기를 간절해 소망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델

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최근에 선교지의 선교사님들과 줌으로 연결해서 대화를 나누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힘드시냐고 물어보면 오히려 사역의 가장 중점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서 더 좋다는 반응을 들으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선교의 거품빼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진행하고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보여주기식 선교, 큰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원동원하고 많은 사람들 모이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던 선교에서 이제는 사람을 키워내고 제자를 훈련하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게 된 선교지의 상황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 된 것입니다.

최근에 선교사님들의 사역이 주춤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더 성경적이고 더 오래 지속적인 사역들로 대신 채워지는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이 뒤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40명 정도 모이던 교회에서 100-200명을 주시도록 기도했는데 펜데믹이 오면서 10명 미만으로 숫자는 줄었지만 그 소수를 말씀 훈련, 제자 훈련을 하면서 오히려 강한 영적 무장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간증이 너무 귀했습니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만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주 도시 선교를 하시는 이태후 선교사님을 모시고 오후에 세미나를 진행 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지난 20년간 사역을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전략을 가지고 진행해오셨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먼저 그 지역에서 대학을 간 학생들이 나왔다는 것은 다른 어린 학생들에게 포부를 심어주고 또 그들이 미래에 대한 꿈도 심어준다는 증거입니다. 건물이나 프로그램이 위주가 아닌 사람을 키우고 사람에 집중하는 사역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델 입니다. 앞으로 도시 빈민들 중에 이런 “모델링”을 통해서 더 많은 대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일들이 생겨나고 또한 지역 사회를 이끌 좋은 지도자가 배출될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또 하나 제가 감동받은 것은 자신이 “까칠하다”는 표현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도움이 안된다면 사역을 제안한 교회를 정중하게 거절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들이 자기 교회를 홍보하기 위해서 선교지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그 지역에 가지고 들어가서 현지 주민들과 상관없이 펼쳐내고 자기만족에 도취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로 사역을 진행하지만 현지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면 서슴없이 잘라낸다는 말에 너무 공감을 했습니다. 사실 저도 선교사로 있을 때 미국이나 한국 교회에서 그런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거절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교지 상황을 모르면서 자신들 교회의 특성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와서 선교지에서 진행하려는 시도는 자기만족 밖에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아들을 보내셨고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영생교회가 40년을 넘어가면서 미래의 영생교회 사역과 선교도 한 단계 성숙하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