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회복이란‘ 주제로 오늘부터 전가족 수양회가 진행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쁨이란 어떤 저건과 결과로서의 기쁨이 아닌 믿음의 증거로서 기쁨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런데 이 기쁨을 세상이 주는 기쁨과 오해하기도 합니다. 신앙에서의 기쁨은 좋은 일이 생겨서 들떠있는 행복한 감정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삶의 즐거움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고, 세상이 주는 재물이나 짜릿한 쾌락에서 기쁨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주변의 친구들로 인한 재미난 얘기와 만발한 웃음이 기쁜 마음을 선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은 감정이나 그낌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설명합니다. 우리의 본래 엿 인격에 세롭게 옷 입힌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근구언적인 기쁨은 뺏어갈 수 없으며 결코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쁨으로 항상 채워져서 매일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진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성령을 내게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그 기쁨과 성령을 연결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서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죄를 짓거나 지속적으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거절하고 반발하면 기쁨은 잠시 달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이 회개하며 부르짓은 간절한 기도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히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을 때는 하늘이 더 푸르게 보이고 모든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처음의 기쁨은 희석되기 마련이고 특히 죄성으로 인하여 삶에서의 영적 싸움에서 패하면서 구원의 기쁨이 점점 희미해지기도 합니다. 이 기끔은 우리의 순종과 맞물려 살아가면서 기복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하여 외부적인 요소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나날이 지속될때는 기쁨이 소멸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니, 기뻐하기가 싫었습니다. 하나님께 흐느끼고 괴로운 상황을 토로하며 싸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기쁨은 감정 상태가 아니기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 자체가 소멸되 수는 없습니다. 그냥 환경적으로 어려웠던 것이고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사귐이 회복되면 그 기쁨도 회복되고 삶에서 어려움을 차분하게 넘어서게 됩니다. 여기서 ‘회복’이라는 말은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하셨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맞춰가면서 살아야 하는 새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기 때문에 내부적인 조건만 충족되면 회복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도의 기쁨은 회복되어야 합니다. 기쁨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고 (롬 15:13),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고 (롬 14:17)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빌4:4). 기쁨은 성령과 함께하는 삶의 열매이기에 주님을 바라볼 때 기쁨은 회복되고 강하게 역사합니다.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기쁨의 회혹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약속하셨기에 그리스도로 채우는 사람만이 그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온전한 기쁨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