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는 신앙의 성숙함의 열매. 인내는 우리의 결단과 지구력의 산물이 아닌 은혜의 산물인 것을 성경은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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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성숙함의 열매로 인내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내에 관하여 우리는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이 있어서 우리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명령으로 오해합니다. 일반적인 도덕적 인내를 열심히 일구라는 말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내가 주어가 아닌 인내가 주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인내가 그 온전한 일을 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NIV성경은 “인내가 그 시작한 일을 마칠 때 우리는 성숙하게 되고” ESV도 같은 의미로 “인내가 그 효과를 다할 때 우리는 온전해진다”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한글 번역은 이 말씀이 암시하는 은혜의 차원을 크게 놓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우리의 노력과 끈기로 온전하게 이룰 수가 없다고 전제를 하고서 하나님의 은혜로서 이끌어주는 인내의 관점을 강조합니다. 인내는 내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끊임없는 친밀한 관계가 오래 지속될 때 결국은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내는 신앙 생활에서 더없이 중요하지만 오랜 신앙생활을 했다는 분에게서도 인내의 성품이 결여된 모습을 자주 봅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결과를 보기 원하는 마음이 오래 참는 인내의 성품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도 항상 “주시옵소서”라는 말이 입에 붙을 정도로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빨리 받기만 원하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다른 은혜와 성품에 소홀히 할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래 참는 성품을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빨리 주시옵소서”라고 열정적으로 부르짖는다면 인내의 성품이 자리잡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사랑의 특성을 말할 때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고전 13:4)를 가장 먼저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열심히 봉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 안에 분쟁과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봉사에 오래참음과 온유함이 결여되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탁월한 은사로 교회 안에서 다양한 봉사를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육신은 오래참지 못합니다. 남이 따라주지 못하면 조급해하고 다른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 나와 다르면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사역의 성과를 알아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큰소리가 나옵니다.

인내는 그래서 우리의 결단과 지구력의 산물이 아닌 은혜의 산물인 것을 성경은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시험과 고난을 통해 우리 안에 인내를 만들어내시는 이도 주님이시고 그 인내가 우리 안에서 온전한 일을 하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시험과 고난은 우리 안에 오래 참는 은혜가 있게 하시고 결국은 기도 응답과 함께 성품의 변화도 이뤄지는 것입니다. 인내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고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는 사역은 온전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온전해지는데 하나님은 마음을 쓰고 계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