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위한 투자가 이땅에서 소유보다 더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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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아버지를 천국으로 먼저 보내고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힘든 것임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커다란 울타리가 없어진 느낌이고 기도 후원의 한 축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저는 목사로 “진정한 위로는 하늘로 부터 옵니다”라고 여러번 설교했지만 제가 직접 경험하게 되니 무척 힘드네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이겨낼 것입니다.

아버지의 삶을 회상해 보면서 저도 남은 삶의 마지막 구간을 이렇게 살자고 다짐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소년 가장이 되어 해방 전에 소학교 3년이 공식 교육의 전부였지만 아버지는 매사에 배움에 대한 열정이 크셨습니다. 최근에도 스마트폰 영상과 컴퓨터 작용법을 시간만 되면 배우시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교회가 나에게는 학교가 되었다고 말씀하셨고 독학과 주변의 도움으로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아니하셨습니다. 청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회계집사님 으로, 다양한 부서 책임과 건축 위원장으로 무슨 사역을 맡으시든지 잘 모르면 밤을 새워가시면서 배우시고 적용하시고 또 배우시기를 반복 하셨습니다. 진취적인 배움의 가치를 자녀들에게 말로가 아닌 삶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73년 미국에 이민와서 우리들이 영어책만 읽으니까 한국어로도 책을 읽으라고 책을 구입해 주시고 두개의 문화를 놓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지 48년이 된 지금도 저희가 두개, 세개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아버지의 자상하신 자녀교육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자녀들에게 같은 교육 철학을 적용했습니다.

저희에게 입버릇처럼 내가 너희에게 남길 유산이라고는 신앙밖에 없다고 하셨고 은퇴 후 가게를 정리하시고는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남은 금액을 말레이시아 선교사 훈련원에 훈련생 숙소를 구입하는데 다 보내신 것입니다. 평소 신념대로 영원을 위한 투자가 이땅에서 소유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대로 저희도 이 길을 신실하게 달려가려고 다짐합니다.

자신의 신앙의 뿌리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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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미국은 70년대 TV가 대중화되면서 복음 사역자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기 위해서 경쟁을 했습니다. 한때 “번영신학”으로 교회가 크게 확장되었던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시작한 Drive-In 교회와 TV 프로그램 “Hour of Power”는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예배 형태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후에 미국은 TV를 통해서 성도들의 안방으로 예배를 송출하는 사역이 크게 확산하였습니다. 후에 오럴 로버츠, 짐 베이커, 지미 스웨걸트 같은 부흥사 스타일의 사역자들은 금세 TV 채널을 장악했고 마침내 자체 텔레비전 방송국까지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며 시대에 앞서가는 사역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형태의 사역은 점점 변질되었습니다. 사역자들의 인기몰이, 성도들의 헌금을 목적으로 하는 전도선교, 기도의 능력으로 자기 홍보를 하는 신유집회 뿐 아니라 쇼를 방불케 하는 찬양집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80년대 초에 신학생이었던 저는 웨스트민스터 고 Harvie Conn 교수님의 목소리가 여전히 귀에 생생합니다. 죄성으로 영향을 받는 우리의 (목사 포함) 특성을 볼 때 예수님을 전파하기 위해서 시작된 대중 복음 사역이 오히려 자신이 유명해지는 매개체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에 미국의 유명한 복음주의 사역자들이 스캔들로 하나씩 무너져 내렸고 TV 복음 사역은 점점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핵심은 복음을 담아내는 그릇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성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적으로 복음을 외칠 수 있는 좋은 시대적인 방안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는데도 우리의 연약함이 사탄의 방해 공작에 너무나 쉽게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최근에 팬데믹으로 인하여 온라인 예배가 교회의 사역 속에 빠르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한 것과 같이 형태만 다를 뿐 역사는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오늘날의 스마트 사역은 70년대의 TV 복음 사역에서 새 옷을 입고 향상된 것뿐입니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서 Virtual Worship이 확산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플랫폼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 틱톡과 같은 앱을 개발하여 모바일로 하루에도 수십 개의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고 손쉽게 동영상을 유포할 수 있도록 활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콘텐츠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이 안 되며 개인적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송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바른 내용인가 검열은커녕, 신학 공부와 거리가 먼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인기몰이로 마구잡이식 내용을 배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때에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스마트 사역을 통해서 엉뚱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교회를 중심으로 뿌리박힌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올바르게 성경적으로 가르쳐 줄 수 있는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온라인으로 이곳, 저곳을 쇼핑하듯이 말씀 따라 삼천리를 돌다 보면 분별력이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다른 말씀을 듣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의 뿌리가 먼저 형성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영생교회가 말씀의 홍수 속에서 성도님들의 신앙을 지켜내는 반석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모든 잘못된 관행을 다 드러내시고 철저한 회개를 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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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코로나 19상황에서 한국 교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천지로 시작하더니 사랑제일교회, 인터콥, 정인이 사건, IM 선교회 등등 어느 하나도 피해갈 수 없는 교회와 연관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교회들은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 거리두기를 했지만 한국교회의 성숙하지 못한 신학적 결과물인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제일교회는 기독교 신앙과 반공주의 역사관의 조합이 어떤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어 내었는가를 목격하게 합니다. 인터콥 사례도 우리 안에 스며들어있는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의 열매이고 열심만 내세우는 선교가 어떤 폐단을 가져오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정인이 사건은 교회 안에서 자라나고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삶에서 어떤 실제적인 변화가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IM 선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빙자한 성공주의와 맞물려 국제화라는 명목의 영어 공부에 목매는 기독교인 부모들의 비뚤어진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계속되는 일탈행위에 대한 일반 교회의 반응이 더 안타깝습니다. 저들은 정식 교회와는 거리가 먼 이단이고 빗나간 사람들이라고 계속 거리두기를 했지만 그럴수록 사회가 교회를 보는 모습은 점점 더 차가워졌습니다. 교회는 피해의식에 쪄 들어 "나는 아니야, 저들과는 달라"하고 아무리 호소해도 한국 사회는 그들과 일반 교인들과 분리해서 보아줄 여유는커녕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조차 없습니다. 정부를 향해서 “왜 너희는 맨날 애꿎은 우리만 괴롭혀”라고 외쳐봤자 그 억울함을 귀담아 들어줄 수 있는 정부도 아닙니다.

물론, 교회가 당한 억울한 면을 나열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회는 항상 사회에게서 억울하게 취급을 받으면서도 진리의 복음을 지켰기 때문에 오늘까지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쯤에 과격한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 이왕 드러내신 김에 더 드러내 주세요. 아니 찔끔찔끔 말고 이참에 여전히 숨겨진 교회의 모든 잘못된 관행을 다 드러내시고 철저한 회개를 하게 해주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바벨론 포로기 시절의 예루살렘 성전처럼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다 타버리게 해주세요. 오랜 기간 교회 안에 형성된 인간적인 욕심, 아집과 비뚤어진 전통, 나쁜 습관들 다 깨쳐주시고 진정한 교회의 공동체의 모습으로 정화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 아닐까요? 코로나로 인하여 이런 결과들이 나온다면 코로나는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생각해 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그리고 여전히 그런 교회들의 영향을 받는 이민교회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를 바꾸시는 하나님의 귀한 역사는 그냥 방치가 아닌 적극적인 개입과 정화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위기의 순간에 더 크게 드러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교회가 교회 되게 바꿔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우리 영생교회 위에도 임하여 신앙의 진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신앙의 진보를 나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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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오늘은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또는 정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영어로는 January입니다. 새해가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시작할 때 모두 야심 찬 계획들을 가지고 걸음을 내딛지만 대부분 ‘작심삼일’이 되기도 합니다. 1월이라는 January는 라틴어 Januarius(야누아리우스)에서 유래되었는데 ‘야누스의 달’이란 뜻입니다.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수호신인데 고대 로마인들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그에게는 앞뒤가 따로 없다고 한다네요. 즉, 이미지에 보이는 두 얼굴의 하나는 지나간 해를 바라보고, 또 하나는 새로운 해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야누스는 그래서 ‘두 얼굴의 사람’ 혹은 ‘이중인격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새해 1월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지난해와 똑같이 뒤돌아보며 계속 포기하는 모습이라면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모습이 맞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해의 잘못을 답습해서는 안 되고 신앙의 진보를 나타내야 합니다.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걸음을 걸어가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물론, 우리 힘으로만 노력하는 것은 덧없이 힘 빼기에 불과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넘어갈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친밀한 교제로 가능합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것은 솔로몬의 깨달음이지만 해 위에 계신 분과 연결될 때 새로운 것만이 아니라 영원이 있다고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Twitter, Facebook을 비롯한 대형 SNS 회사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험인물로 간주해서 그의 계정을 영구정지시키기로 했습니다. SNS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폭도들을 선동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이유입니다. 미국이 정치적으로 보수, 진보로 나뉜 모습이 표면적으로 드러났고 앞으로 더 심화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진보 성향의 몇몇 명문대학은 보수를 표명하고 행동하는 졸업생들의 학위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까지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운동도 모자랄 때 자꾸 양분화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보수가 무슨 국가존폐의 위험이 되는 것 같이 칼날을 겨누는 모습도 우려가 됩니다.

그동안 SNS를 통해서 마약 거래가 이뤄지고, 검은돈이 오가고 동성애를 부추기고 인신매매가 성행할 때는 회사 운영자들이 그들의 계정을 닫겠다는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범죄에 연관된 사람들의 계정은 그냥 두다가 정치적인 대립에서는 계정 영구 퇴출 문제가 나오니까 의아한 것입니다. 돈이 되니까 방관하더니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모습은 바로 야누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죄악 된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한 달간 신앙의 진전을 이루었다면 꾸준히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읽기를 게을리하지 마시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하루 내내 할 수 있습니다.

운전하면서 기도하고, 일하면서 콧노래로 찬양하고, 하나님 말씀을 머리에 되새기면서 기억할 때 내 자아가 주장하는 삶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맛을 계속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뒤돌아보면 신앙의 진전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올해 영생의 가족들이 신앙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도록 남은 11개월도 열심히 달려가십시다.

아멘!

하나님의 사면을 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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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가들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한중에 사면권이 있습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옥살이를 하든지 법무부에서 면밀하게 검토한 서류를 바탕으로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면 국가의 명절에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기도 합니다.

때론 억울하게 옥살이는 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거나 정치적인 실타래를 풀려는 의도로 사면을 감행하면서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면권의 최종 결정은 대통령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 입니다.

한국에서도 감옥에 있는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을 주제로 시끄러운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만 미국에서도 사면과 관련된 뉴스가 많은 혼란을 빚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퇴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에 평소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죄수를 사면해 주어서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 대통령들과 다르게 사면권을 폭넓게 행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로비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사면권이 남용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면의 본래 취지는 법적인 오류를 바로잡고 억울한 자의 신원을 회복해 주기 위한 것인데 자신의 정치적인 우군과 미래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중심으로 사면을 감행했다면 긍극적으로는 공정한 법적 절차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공정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사면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면이란 ‘죄를 지었음에도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사해준다’라는 의미 입니다.

감형이나 상황참작이 아니라 온전하게 죄로 인한 형벌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죄의 사면을 죄사함(롬 4:7)이라고 합니다. 성경적 의미는 죄를 깨끗이하여 눈과 같이 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동과 서가 먼 것 같이 죄를 멀리 옮겨서 다시는 죄라고 인정하지 아니하고 또한 기억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이 죄사함이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의 죄사함은 그냥 죄를 도말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이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냅니다.

즉, 죄에 대한 사함은 누가 되었던지 죄값을 지불해야만 죄사함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가 등장합니다. 십자가 외에는 구속이나 죄사함이 없기 때문 입니다.

죄사함은 우리의 신분을 바꿔놓고 천국시민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삶의 방향 전환이 이뤄졌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삶에서는 아직 우리 속에 남아있는 죄성이 유혹에 쉽게 흔들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반복적인 은혜로 서서히 바꿔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성이 그리스도만 더욱 의지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왕의 사면을 받고 자유함을 얻은 영생의 가족들에게 2021년은 신앙의 진전을 이루는 한해가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