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의 격려가 인내를 만들어 내고 그 인내의 걸음이 열매를 맺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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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인 Amazon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마이애미의 한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중에 하나인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본래 물리학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학부 수업에서 천재 동기들과의 현격한 차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평균 이상의 뛰어난 학생들만 모인 대학에 가서는 본인이 더 이상 뛰어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고는 이내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꿔서 겨우 졸업했습니다. 그는 전공을 바꾸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남들에게 없는 뛰어난 ‘호기심’을 삶에 활용해보기로 결심하고 차근히 실천에 옮겼습니다. 졸업 후 곧바로 아마존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작은 회사에서 몇 년간 전자 상거래 경력을 쌓다가 1990년에 불과 30세의 젊은 나이에 소규모로 아마존을 창업했습니다.

창업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또 창업이 삶에서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창업하여 실패하는 사람도 수없이 많고 창업과 동시에 새로운 자신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프도 물론 창업하여 곧바로 회사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호기심과 인내라는 두 개의 무기를 장착하여 성실하고 꾸준히 자신의 철학을 고수하며 그 길을 달려가 회사를 점점 키워가면서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21세기,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고 눈코 뜰 새 없는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회사의 사업으로 접목시켜 꾸준히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필요한 물건을 집 앞까지 빠르게 배송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었던 것입니다.

제프는 자신이 가진 호기심에 이끌려서 완전히 다른 길을 개척해내어 오늘날 세계 최고의 회사를 이끄는 CEO가 되었습니다. 호기심과 인내 (Curiosity and Perseverance)는 지금도 아마존의 모토가 될 만큼 그는 세상을 읽는 눈이 탁월하고 그 변화에 대처 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 합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그래서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이 모험을 시도하게 만들고 인내로 버텨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기심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그래야 미래에 모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중에서도 이런 진취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대학교 때 전공을 바꾸고 처음 계획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 중에는 대학에 가서 처음 가졌던 전공을 바꾸려고 부모님과 상의하는 일도 있고 그들 중 대학을 졸업하고 인생의 첫발을 내딛고 있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기쁨이 있는가?’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호기심이 삶이 되어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을 주어야 할 것 입니다. 주변에서의 격려가 인내를 만들어 내고 그 인내의 걸음이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는 삶의 과정 중에서 발견되고 주변의 이해와 격려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번 해에 졸업을 하는 많은 영생의 자녀들에게도 이런 귀한 결과가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미래의 현지 사역과 일군 지원과 동시에 현지교회도 왕성하게 성장하는 비젼을 갖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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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한 국가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선진국에 유학을 보냈던 학생들이 공부를 다 마치고 다시 본국으로 복귀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Brain Drain 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인재의 재능이 방수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선진국에 가서 질 좋은 삶을 맛보고는 자기를 지원해준 국가를 배신하고 선진국에서 좋은 직장을 얻어서 눌러앉게 된 것을 안타깝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선교사역이나 한 국가의 영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과정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교사에 의해서 미래가 촉망되는 현지인 젊은이를 발굴해서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리고 학비와 생활비를 모금해서 지원해주면서 다시 본국에 돌아와서 복음적인 사역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좋은 성적으로 공부를 마친 학생은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공부한 곳의 한 지역교회 일을 맡아서 눌러앉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국보다 뛰어난 삶의 환경을 맛본 후, 다시 옛날의 어려운 환경으로 가는 것을 주저하거나 선진국에서 공부하며 적응을 마친 자녀들을 핑계 대며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몇 년간 그 사역자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현지의 교회는 허탈해지고 후원을 주선한 선교사는 동력을 잃고 맙니다.

아폴리네리 목사님은 1994년 르완다 인구의 15%의 생명을 앗아갔던 인종 말살 내전을 거치면서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그때 난민 캠프에서 한국인 선교사님을 만나 그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발탁되어 함께 일하는 젊은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선교사들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미국에서 신학교를 다녔고 이제는 박사학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논문에서 GENOCIDE(인종 청소) 과정에서 아픔을 당한 많은 여성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어떻게 영적으로 치유를 하고 예수님 안에서 바른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는지를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아폴리네리 목사님 뿐 아니라 세 자녀도 다 신앙으로 잘 자라났고 큰아들은 전북대학 병원의 후원을 받아 의대 과정을 잘 마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분 가정은 다시 르완다를 위해서 쓰임 받기로 작정하고 착실하게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영생 장로교회는 현재 사역 및 일군을 지원하지만 미래의 현지 교회도 동시에 보는 사역에 촛점을 맞추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생교회에 르완다의 아폴리네리 목사님을 연결시켜 주셔서 미래에 그 민족 교회들이 왕성하게 성장하는 비젼을 가져 보기를 원합니다. 그 나라 언어로 그 나라 표현 방식으로 예수님께 예배하는 그날을 우리가 비젼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감사하는 영생의 가족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내가 먼저 사랑을 친천하는 가족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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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새삼 ‘가족’이라는 말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우리 속담에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민 생활에서 아마 같은 교회 식구들이 친척보다 더 가까운 가족의 개념 속에 포함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웃의 개념이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웃집’이라고 하면 옆집을 의미하지만, 이웃과 눈인사 정도만 한다면 아마 나란히 가까이 있다는 의미의 이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저 물리적 거리만 가깝고 심리적으로는 가깝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하면 항상 가까이 만나고 정을 나누는 관계를 뜻합니다. 그런 의미로 한 교회 가족들은 친지보다 더 가까운 가족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예전에는 한마을에 살면 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가족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내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상징적인 말이지만 그 가족사에 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서로의 사정을 알기에 서로 힘이 되고 아플 때 음식 들고 오는 사람, 경사가 났을 때 축하해주는 사람, 집에 부음이 났을 때 함께 우는 사람이 한 가족 입니다. 이민교회는 이런 면에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식구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대가족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가족들은 헤세드 사역을 통해 팬데믹 기간에도 아픈 교우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배달해주고,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구제해주는 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가진 매력은 은혜로 부름받은 자들을 성도로 부르는 데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은혜는 성도를 통해서 흘러넘치고 많은 영혼들에게 치유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표현되는 사랑은 점점 더 확산되어 정에 메마른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웃이란 말에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누가 너의 이웃인가?”라고 물으시지만 저는 성도님들께 묻습니다. “누가 나의 가족인가?” 만일 내 가족 중의 하나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나온 요구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사랑할까?”에 대한 질문에 예수님은 역으로 ‘누가 참 이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는 이웃이 점점 없어진다고 허탈해하는 요즘, 교회가 참 이웃이 되어주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교회 안에서 한 가족으로 실천되지 않는다면 교회로 인하여 사회가 변화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생 가족입니까? 누가 내 가족인가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가족이
되어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영생 가족들이 많이 나올 때 교회는 이 땅에서 천국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아멘!

현지 지도력 개발은 선교사의 사역을 평가하는 바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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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최근 선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단어는 ‘사역의 현지 이양’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사역지에 도착하면 바로 미래의 계획속에 출구 전략도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역 이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단어는 현지 지도력 개발입니다. 선교 사역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내가 모금한 재정이 얼마나 많이 현지에 투입되느냐로 성패가 좌우되지 않습니다. 선교사가 같이 기도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키워낸 현지 제자가 선교사보다 더 잘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세워진 사역들을 그들에게 물려주고 적당한 시기에 떠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물론, 너무 빨리 떠나면 그 사역은 무너지고 말 것이며 너무 오래 머물다가는 내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현지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뺏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역지에 세운 교회든, 학교든, 훈련 사역이든 그 사역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현지 지도력 개발은 선교사의 사역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되기에 사람 키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만일, 현지에 있는 학교나 교회의 재산권이 현지에서 믿을만한 사람들이 구심점이 되어서 법인체를 만들고 건강하게 현지에서 책임지는 재정으로 서서히 넘어가게 된다면 그 사역은 미래에도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한국의 숭실대학이나 연세대학은 처음 선교사가 시작했다가 한국인 지도자들이 이어받으면서 훨씬 크게 확장된 아주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런데 선교사 중에는 세워진 현지의 사역을 개인 재산으로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거나 이것을 담보로 거래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산권을 미국이나 한국의 어떤 교회나 단체에 넘겨주고는 그 교회를 물주로 만들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것을 기대합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현지에 세워진 학교나 교회는 더이상 성장하지 못합니다. 타국에 재정이 빵빵한 물주가 있다는 생각에 현지인들은 헌금도 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어떤 희생도 하지 않고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선교사가 떠나고 나면 그 사역은 폐허가 되는 경우를 선교 역사를 통해서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선교사 자신도 사역을 확장하기를 원할 때마다 해외에 있는 물주에게 연락하고 기대는 마음은 영적인 활력을 빼앗아 버립니다. 영생교회는 그래서 사람 키우는 사역을 하기로 방향을 정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선교사는 교회에서 같은 마음과 방향으로 세워질 때 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몇 년 전 파송 선교사에 대한 규정을 영생 공동체에서 한 가족으로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을 파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파송 선교사란 성경의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파송된 경우처럼 본교회 성도들 중 선교사를 보내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파송한 선교사를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고 사역하는 동안 마음과 물질로 동참했습니다. 이처럼 아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영생가족들이 앞으로도 더 많이 선교지로 떠나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현지에서 사람을 키워내는 사역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식구, 배려는 사랑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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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5월은 ‘가정의 달’로 가정의 중요성과 행복은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란 같이 매일 지내는 사람들로 구성되기에 한자로 식구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食(먹는) 口(입)로 말 그대로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함께 정을 나누며 생활하기 위해 밥을 같이 먹는,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입니다. 저도 가족이라는 말보다는 식구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보통 식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식구의 개념이 핵가족을 넘어서 혼자 살면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이기주의적 사회 때문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주거지도 혼자 살 수 있는 구조로 지어진 스튜디오 아파트, 오피스텔 등이 생겨나고, 혼자 밥을 먹도록 구성된 1인분 포장 음식, 그러다가 ‘혼밥’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식당마다 칸막이를 만들어 홀로 식사를 해결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식구라는 울타리가 무너지고 급격하게 개인적인 사회로 전환되면서 또 하나의 좋은 단어인 배려도 없고 양보도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배려’라는 너무나 좋은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배려’라는 의미의 전체를 전달하지 못할 만큼 의미가 깊은 좋은 한국말입니다. 배려는 타인과의 관계를 전제로 쓰이는 단어이며, 특히 식구들이 같이 사는 집은 배려가 가장 필요한 공간입니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같이 써야 하는 화장실과 샤워실, 음식을 같이 만드는 부엌과 식탁, 매일 한 식구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거실 등은 서로 배려하고 양보를 실천하는 좋은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가족끼리 거친 말이나 무례한 행동이 계속된다면 한 가족이라도 분열의 조짐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특히 한 가족과 한 공동체 안에서 배려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됩니다.

ELMC 교회가 다시 현장 예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됩니다. 여전히 실내에서 모든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만, 예배당 모든 문들을 열어놓고 드리는 예배에 한어권 교인들의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제2 예배실 바로 앞에서 발열 체크가 진행되다 보니 예배당에 들어서는 분들의 서로 인사하고 간단한 대화조차도 안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님들께는 방해가 됩니다. 영어교회 예배 진행 중에 3부 예배 준비를 위해서 일찍 오시는 분들은 정숙함으로 영어 예배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2부 예배가 끝나고 옆문으로 나가지 않고 제2 예배실 앞쪽으로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특히 배려하는 마음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내 예배가 중요하다면 영어교회의 예배도 그들에게는 생명과 같이 중요한 것이고 예배 중에 방해가 되는 큰 목소리는 예배자들을 아주 불편하게 합니다. ELMC도 영생교회의 식구이므로 가족 간의 배려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