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후에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앙으로 성숙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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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한국 교회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모습이 점점 혐오감을 주는 모습이 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미국도 아직 한국 사회만큼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없지만 성도들의 지각없는 말과 행동이 사회적인 신뢰를 잃어가는 것도 현실입니다. 한국 사회가 60/ 70년도만 하더라도 방범대원조차 야간 통행금지 시간에 성도들이 새벽기도 간다고 하면 호의적으로 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선망의 눈으로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세기 만에 기독교를 대하는 사회적 편견이 바뀌게 된 것은 그들의 탓보다는 성도들이 자처한 원인이 크고 심은대로 거두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날 드라마, 영화나 인터넷을 통해서 표현되는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에 대한 반응은 말 그대로 “혐오감을 주는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최근에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 게임”에서도 이런 반기독교적 정서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비판을 불편하지만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기도와 신앙을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로 그려졌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신앙적 발언 하나, 하나가 듣는 사람들을 매우 거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요구하는 것도 편협한 개인적인 복을 위해서, 은혜라는 단어가 쓰일 때도 내 자신에게만 돌아오는 결과를 표현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평소에 기도나 은혜를 이렇게 헤프게 표현하며 주변에 값싼 이기주의를 부추키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 자신, 내 가족만 괜찮으면 남들은 어찌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내 편 이시라는 위선적인 모습을 신앙으로 드러내지 않았는지요?

우리 구원은 당연히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그러나 구원 후에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앙으로 성숙한 삶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 매일 십자가 앞에 나아와 내 인격이 다듬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들어가야 하는데 교회가 그것을 가르치는데 실패 했습니다. 신앙이 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연결되어 남보다 앞서는데 은혜가 쓰여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관계 형성이 안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편파적인 은혜는 오만이 되어서 교회밖에 있는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추악한 죄를 짓더라도 회개만 하면 천국 간다구요?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립니다. 은혜를 어설프게 이해하면 이런 싸구려 은혜로 인하여 신앙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한 성도들을 배출하게 됩니다.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는 우리의 종교적인 삶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는가 점검할 수 있는 적절한 자극제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고백과 삶 사이에 모순이 없는지 끊임없이 돌아보라고 요구합니다. 돌아보면서 신앙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미래를 위한 가장 큰 투자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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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그것을 위해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에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기도 요청을 많이 받곤 합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저런 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강은 그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는 것을 실감합니다. 한때는 시간은 있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즐기지 못했고 이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니까 반대로 건강이 따라주지 못해서 즐기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무엇을 위해서 달려갔는지 모를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고 계획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는 자책감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지금과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 미래를 삶의 계획 속에 담아내면 후회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여유가 없더라도 조금씩 저축도 하고 미래를 위한 은퇴 프로그램에 가입하여 설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예전 선교단체 국제 대표로 섬길 때 저희 부부는 같은 단체 선교사님들 방문으로 여러 국가에 가서 기차로 이동하면서 서구에서 여행 온 70, 80대분들을 가끔 만났습니다. 저희는 재정 절약을 위해서 기차 여행을 했지만, 연세가 지긋하신 부부가 이국 땅에서 기차 여행을 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보였습니다. 그것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무거운 가방을 끌어가면서 기차와 버스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모두 젊을 때 이런 미래를 꿈꿔왔다는 것입니다. 즉흥적으로 여행에 나선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날들을 위해서 계획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건강을 지키는 운동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계획한 것을 실행에 옮겼으니 얼마나 즐거운 여행이 되었겠어요?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졌고 나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갔던 과거를 후회만 하지 말고 이제라도 돌이키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영부영 삶을 보내고 실속 없이 세월을 까먹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성찰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여호와께 돌아오는 결단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게 됩니다. 더 늦기 전에 부부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같이 읽는 시간은 세상의 다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됩니다. 세상에서 미래를 위한 가장 큰 투자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3)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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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지금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갓 나온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지구촌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83개국에서 1위를 구가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무엇이 이토록 세계를 강타한 한류 드라마로 만들어주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세속적 문화 축제인 할로윈을 준비하는 많은 업체에서는 오징어 게임에서 경비원들이 입었던 캐릭터 의상과 가면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합니다. 이 드라마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에는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한류가 한몫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한국 사회의 정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돈을 좇는 세상 사람들의 정서를 그려낸 드라마 설정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한국 문화에 깊숙이 배어있는 한국 사람들의 놀이문화, 특히 한국의 어린이들이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공터에서 놀던 다양한 게임들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속의 너무 끔찍한 장면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사회에서 빚을 지고 낙오된 사람들이 한탕주의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게임에 참여하지만, 그것을 목숨과 맞바꾸는 스토리 구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 목숨을 담보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임과, 탈락한 사람들이 피 흘리면서 죽어가는 섬찟한 장면들에 왜 세계가 열광하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입니다. 영화에서는 말 그대로 생존 경쟁이지만 그런 장면을 보면서 카타르시즘을 느끼고 잔인성에 환호하는 세상의 죄악된 가치가 더 섬찟한 지도 모릅니다. 한국 사람들의 정서 속에 배어있는 놀이 문화와 그 안에 담겨있는 우리의 가치가 잘못 알려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유년 시절 한 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주는 재미, 딱지치기로 꿀밤 먹이기, 구슬 놀이에서 따온 구슬을 보면서 흐뭇했던 기억, 학교 운동회 때 하던 줄다리기, 설탕 뽑기를 해서 선물 받던 재미들이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옛 놀이문화의 소중함이 아련한 어린 시절 동네 모습과 함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는데 그 모든 것이 공포로 재설정되고 죽음의 놀이로 변하는 기분 나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들이 지우개로 다 지워지고, 놀이 한판에서 실존적 생과 사를 오가는 절망적인 놀이가 된 것을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놀이를 처음 대하는 세계인들이 가지게 될 한국 놀이에 대한 오해와 미치게 될 영향도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에 승리하시면서 삶의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죄악된 세상은 여전히 죄의 근본인 물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탕주의를 그려내는 영화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아니, 한탕주의, 로또 당첨에서 바랬던 꿈을 영화로 대리 만족하며 몰입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상적 가치가 확대되지 않도록 성경적인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의와 평강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이런 드라마에 가치를 두지 않고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순종할 따름이고 도구로 쓰임 받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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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오늘은 우리가 지난 몇 개월간 태신자를 작정하고 릴레이 금식과 합심기도, 금요 기도회와 새벽 기도회로, 영혼을 살리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준비한 “예수 사랑 초청” 주일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도하는 일은 교회의 중심사역이고, 영혼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선행되어야 하기에 기도하면서 고집스럽게 진행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길을 한 번이라도 더 알려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고,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 “예사초” 에서 우리의 관심은 숫자가 아닙니다. 몇 명이 초청됐고 그중에 몇 분이 예수님을 영접했으며 또 영생교회에 정착하신 분이 몇 분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 우리 교회의 핵심 사역인 것을 깨닫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 사역에 집중하는 성숙한 교회로 올라서는 것은 숫자로는 가늠할 수 없는 더 큰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에 집중하면서 삶의 모든 것을 그것을 중심으로 진행하다가 그 일을 마치면 더 이상 그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던 운동선수가 올림픽이 끝나면 오랫동안 훈련을 떠나 있거나 훈련장 근처에 가기도 싫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달려가다가 그 일이 끝나면 허탈해하고 방향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전도사역은 일 년에 한 번, 반짝 진행하고 맹렬한 불이 꺼지듯이 식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도한 영혼은 오늘 예수님을 영접할 수도 있고 마음이 열려서 앞으로 다른 때 하나님께서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초청받은 분이 오늘 이 자리에 오시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순종할 따름이고 도구로 쓰임 받을 뿐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영혼을 바꾸지 못합니다. 한 영혼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이고 우리는 단지 순종하며 결과는 그분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전도 여행에서 파송 받았던 안디옥 교회에 다시 돌아와서 보고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들의 보고에서 사역 후에 자기들이 어떤 일을 했다는 자랑이 전혀 없습니다. 보고가 모두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행 14:27) 마음의 문을 여시고 사역자들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나눴고 그로 인하여 기쁨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혼 구원에 초점 맞추는 영생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앞으로도 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열매를 맺든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영혼 구원의 사역이 앞으로도 계속 영생 장로교회의 중심 사역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삶의 유일한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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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우리는 때로 삶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God, where are you?” (“하나님 우리가 이렇게 힘들 때 어디 계세요?”)라는 질문을 곧잘 던지곤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인생에 고난이 닥칠 때, 강풍에 집이 무너졌을 때, 사랑하는 가족이 떠났을 때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잔혹한가를 물으면서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지 않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너는 평소에 모든 것이 평안할 때 어디에 있었느냐?” 우리는 삶에서 잘 나갈 때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다가 꼭 어려울 때만 하나님 어디 계시냐고 묻는 건 아닌지요?

Billy Graham(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딸 Anne Graham Lotz(앤 그래함 롯츠)가 어느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911테러에 관하여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How could God let something like this happen?”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같은 참사가 이뤄지도록 그냥 놔두실 수 있느냐는 의도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Anne의 답변은 현재의 미국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 줍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도 우리처럼 이런 일들을 가슴 아파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년간 사회의 각 분야에서 하나님을 거부해왔습니다. 우리의 학교에서 기도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정부청사와 사회기관에서 십계명을 떼어 버렸습니다. 법정에서 성경에 손을 얹는 것을 더 이상 못하게 제한했습니다. 그리고는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종교, 비성경적인 가치관을 환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우리 삶에서 제발 떠나달라고,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대로 조용히 물러 가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그 자리에는 죄가 가득하고 불법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이제 와서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는 훈계하고 돌이키고 바로 가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기준을 귀찮아했고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어릴 때 바르게 양육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훈계하지 못했을 때는 성장해서는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최근 사회는 마약, 음란, 자살 같은 부도덕한 일이 만연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그런 것쯤은 받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성애 결혼이나 성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도 그 사람의 인권이라며 눈감아줍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못하고 기준이 없이 흔들리는 사회가 되었지만 오히려 자유로워져서 좋다고 하였고 지금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삶의 유일한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세상을 교회가 앞장서서 세워나가기를 바라면서 인내하며 감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진리에 바로 설 때 사회는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