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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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우리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서에는 비슷한 내용들이 많고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세상의 낙도 지나갈 것이기에 덧없는 것이고 세상의 고난도 지나갈 것이라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는 의미는 다분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언급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은 유대인의 지혜를 모아놓은 미드라쉬(Midrash) 책에서 나왔습니다. 그 책은 유대인이 자녀들을 가르치는 다양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다윗왕의 반지에서 나오는 내용 중 일부가 그것입니다.

다윗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서 부탁 하나를 합니다. “자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게. 그리고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해주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갖게 해주는 글귀를 새겨 넣게나.” 그래서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듭니다만 문제는 그 안에 새겨야 할 글귀입니다. 그는 고민 끝에 이스라엘의 지혜자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일러준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유태인들은 이 지혜의 말씀을 대대로 내려오면서 자녀들에게 삶의 기준으로 삼으라고 가르칩니다. 무엇이 잘될 때 절대 자만하지 말라,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반대로 슬픔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지 말라고 합니다. 인내로 잘 이겨내면 분명히 반전할 때가 오게 될 것이고 그것이 삶에서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라는 온 세계에 퍼져가는 복병을 만나서 고난을 거치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컴컴한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만 거치는 고난이 아닙니다. 이미 세계 역사 속에서 폭넓은 지역에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주는 질병은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된 것이 이전과 비교하여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 이겨 내었고 질병 관리에 관한 연구와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아픔의 시간도 어둠의 시간도 때가 되면 다 지나갈 것이고 미래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과 유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수고가 쌓여서 주님의 손길이 되어 쓰임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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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2020년 3월 둘째주에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우리 삶의 변화들을 겪은 지 오늘로 정확하게 일 년 반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워낙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18개월이 아니라 18년이 족히 된 기분입니다. 당회에서 소수의 인원만 제외하고는 온라인 예배를 결정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교역자 몇 분을 앞에 두고 주일 예배를 인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텅 비다시피한 예배당에서 카메라를 주시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지만, 때마다 새로운 은혜로 다가와서 힘을 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당 안팎의 방역과 소독을 위해 땀 흘리며 주중에도 나오셔서 사람 손이 닫는 모든 곳을 세제로 손수 닦으시던 장로님, 집사님들의 수고도 눈물겹도록 감사한 부분입니다.

지난주에 오랜 암 치료 후 다 빠졌다가 새로 난 머리카락을 보란 듯이 모자도 안 쓰시고 예배에 오신 권사님을 보았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시고 예배에 대한 간절함이 담긴 얼굴에 “챔피언”이라는 면류관이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지난 18개월간 사랑하는 가족들을 주님 품으로 먼저 보내신 가정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 곁을 지키신 분들의 얼굴에도 “챔피언”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것을 보게됩니다. 먼저 주님께서 불러가신 분들은 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분들입니다. 그중 주일에 3번의 예배를 꼬박 같은 자리에 앉으셔서 감격의 얼굴로 진지하게 예배에 임하시며 많은 성도님들을 격려하시던 장로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외에도 장차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챔피언”의 면류관을 받으실 분들이 차고 넘칩니다. 팬데믹 기간에 성도님들의 어려움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구제헌금을 하신 성도님들, 음식을 만들어서 아픈 분들께 전달하신 성도님들, 매일 다양한 상황의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로 간절하게 기도하신 성도님들, 선교사님들의 어려운 상황을 기꺼이 함께 짐을 지려고 하신 성도님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주신 모든 분들의 수고는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일이면 발열 체크를 위해서 일찍 오셔서 묵묵히 섬겨주신 분들, 예배를 위해서 섬겨주신 예배부, 새가족부원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지난 18개월간 예배에 집중하는 일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매 주일과 수요일에 찬양팀, 찬양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헌신하신 찬양대원들도 기억이 납니다. 특히, 주일예배와 수요예배가 온라인으로 각 가정의 예배 처소에 송출될 수 있도록 섬겨주신 미디어 팀들에게는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넘칩니다. 그리고 주일학교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어린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신 교사들도 있습니다.

어제로 9*11 사건이 20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사건 이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미래는 우리가 통제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책임 있게 살아갔는지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평가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수고가 쌓여서 주님의 손길이 되어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쓰임이 사회에 영향을 주는 교회를 이루게 되고 그 교회들이 연합하여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이 땅에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으로부터 “챔피언”으로 인정받는 영생교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2021 예사초 선포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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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오늘은 예사초 선포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들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교회의 본분 된 일을 올해도 순종하며 진행하기를 원하여, 한 달간 집중적으로 기도하면서, 초청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동안 금요기도회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며 진행했지만, 이제는 온 교회가 한마음으로 릴레이 금식하며 태신자를 방문하는 일도 이뤄지게 됩니다. 이것은 변화된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의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길으러 대낮에 우물가를 찾았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낮에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우물가에 왔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고 하시자 여인은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을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부탁했고 대화를 이어가면서 눈앞에서 메시야를 본 것입니다. 메시야를 믿으면 어떤 변화가 이뤄지는가를 요한은 여실히 보여주고 그 기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물동이를 버려둔’ 것입니다. 메시야를 만나고 인생의 전환이 이뤄지면 물동이나 그 외의 살아가는데 요긴한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더 소중한 보배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행동은 더욱더 인상적입니다.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기피 대상이었던 동네 사람들을 이제는 자진해서 찾아가 기쁨을 나누려고 합니다. 복음은 이렇듯 회피하던 모습에서 적극적으로 기쁨의 근원을 전달하려하는 모습으로 태도를 변화 시켰습니다. 그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오직 하나, 메시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야를 알고 나니 이제는 더는 사람들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자신만의 메시야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 전체의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사생활도 이해하시고 품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만 받은 것이 아니라 삶에서 기쁨이 넘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사마리아 여인에게 일어난 변화는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도 메시야를 인격적으로 만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웃들에게 “와서 보라”고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확신 있게 초청해야 할 이유입니다.

기도하는 삶 – 기도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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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지속된 탈레반과의 전쟁은 그곳에 주둔하던 미군의 발 빼기로 막을 내렸고 자국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국민들의 모습은 혼돈과 아픔 자체입니다. 지난 20년간 미국과 동맹군이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해서 퍼부은 재정은 상상을 초월하고 피해자 규모도 엄청납니다. 향후 정확한 통계지수가 나오면 미국이 어떤 전쟁을 했는가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게 나올 것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퍼붓던 돈이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게 되니 이미 오바마 행정부가 출구 전략을 내놓았고 트럼프 대통령 때 철군하기로 양호각서를 체결했으며 바이든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결단이라고 항변하며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저는 이 사태를 보면서 복음 사역에도 시사하는 것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국의 전쟁 의도는 친미 정권 수립에 있었지만 미국에 빌붙어 풍족한 생활을 즐겼던 아프간 지도자들은 이미 돈의 맛에 길들여져서 자립할 계획이나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위태해지자 국민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망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선교단체는 선교 훈련을 할 때 동일하게 선교사에게 출구 전략을 세우게 합니다. 선교사가 언제까지나 그 지역에 머물 수는 없으므로 가장 시급한 것이 현지인 지도력 개발과 사역 이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에게는 현지에서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위험한 사역 방식입니다. 선교사가 홀로 모금해서 현지에 건물을 세우거나 돈으로 현지 사역자에게 월급 주면서 사역하게 할 때는 선교사가 떠나면 무너지는 사역 구조가 됩니다. 현지인들이 주인의식이 없기에 월급 때문에 일하고 선교사 눈치 보면서 일하는 척 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는 선교는 겉모습만 그럴듯하지만 결국은 기초가 약해서 무너지게 됩니다.

선교사역에서 오랫동안 남는 것은 건강한 현지 지도력을 세우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선교사든 현지인이든 모두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면서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가치를 공유할 때 자연스런 제자 훈련이 이뤄집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키워낸 제자는 선교사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고 오히려 선교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들에게 사역을 물려주어도 큰 기쁨이 있습니다. 교회든, 선교사역이든 정부 수립이든 사람 키우는 일은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가 되어서 궁극적으로 자립하여 건강하게 일을 진행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제자를 키우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는 영생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세상이 곤고할 때 필요한 것이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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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코비드-19는 말 그대로 팬데믹입니다. 팬데믹이란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세계의 모든 국가와 인류가 바이러스 질병의 영향권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이렇게 세계 전역에 다시 확산되는 것은 그만큼 세계는 하나가 되었고, 자유로운 이동으로 인한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는 확증이기도 합니다. 백신 접종을 한 사람에게는 아직 변이 바이러스가 큰 위험을 주지는 않지만 감염 경로로 사용이 되기 때문에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은 여전히 필요한 사항이 되었고 이제는 각 주 정부가 상황에 따라서 강제 착용까지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질병 센터에서는 두 번째 백신 접종 이후 백신 예방 효과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면 부스터 접종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인간 역사를 보면 팬데믹(에피데믹: 상황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갑자기 퍼지는 질병)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조의 으뜸되는 인간은 항상 어떤 질병이든 다 이겨내고 그다음 단계로 진출했습니다. 이번의 코비드-19 팬데믹도 우리의 삶에서 완전한 해방과 종식을 허락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바이러스 때문에”가 아닌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적응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배하라고 주신 명령은 어떤 복병이 생길지라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주권자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더 좋은 백신도 개발될 것이고 치료제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공통된 고통을 겪을 때마다, 세계 전역에 역병과 기근, 다양한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교회는 흔들렸고 믿음의 사람들은 주춤했습니다. 그리고 원인을 규명하기에 바빴지만 그런 일들은 사실 건전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교회는 고난이 올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고민하고 행동에 옮겼지 왜 이 고통이 찾아왔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서 생성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의 연결에서 생겨납니다. 그 믿음이 흔들림 없이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 일어나 빛을 발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혼란 중에 더 굳건하게 우리를 세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합니다.

교회는 눈앞에 주어진 일에 순종하다 보면 하나님 섭리의 큰 그림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도 상황에 쫓긴 과정에서 필요한 일을 했지만, 그 뒤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뒤돌아보니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린 현장이 된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영혼의 목마름으로 진리를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세상이 곤고할 때 필요한 것이 복음입니다. 올해 예사초는 이런 세상에 빛을 드러내는 기회가 될 수 있기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영생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