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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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죽음 이후의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미화시키려고 합니다. 묘지를 화려하게 만들고 온갖 장식으로 치장합니다. 힌두교나 불교는 고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 차려서 묘지에 갖다 놓는 모습도 있습니다. 고인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삶에 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묘지를 아름답고 깨끗한 장소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남미와 필리핀에서는 일 년에 한번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 있는데 가족들이 묘지에 모셔서 밤새워 먹고 마시면서 죽은 자와 영적인 소통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죽음은 아무리 아름답게 묘사하고 치장해도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이별은 인간이 겪는 환란 가운데 가장 큰 시련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 같습니까? 기분나쁘다고하고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답변을 들을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이것이 현실이고 확실한 것임에도 자꾸 피하려 합니다. 성경은 죽음이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온 죄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추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질병과 재난과 죽음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필연적인 삶의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고 출생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유쾌하지 않은 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죽음 아래 종노릇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아버님의 소천으로 잠시 마음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만일 죽음이 끝이라면 우리는 아무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음이 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라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친히 부활하시고 “첫 열매”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부활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활에 대하여 믿기를 주저합니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고 과학적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부활은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자기가 부활이고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은 나는 곧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고 주관하며 죽은 자를 살려내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주관자이시며 생명을 다시 살리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죽음 아래 있는 인간들에게 죽음에서 해방된다는 부활의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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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작년에 미네소타에서 불필요한 공권력 행사로 조지 플로이드가 죽었을 때 미 전역에서 Black Lives Matter 라는 인종 편견에 대항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몇몇 도시에서는 불법적인 폭동으로 번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아시안들은 그 사건을 우리와는 무관한 방관자의 자리에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근절 되었는가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모르고 또 그것을 들여다볼 수도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사회적으로 흑인들을 대놓고 무시하지 못하는 환경은 조성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고개를 들고 서서히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틀랜타에서 아시안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Stop Asian Hate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미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아시안이라고 놀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도 겪는 일상입니다. 그러나 이민 1세들은 꾹 참아오던 우리의 문제들을 이제 2세와 3세들이 전면적으로 조직적으로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앞장섰고 정치권이 반응하면서 미디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 사건을 통해서 인종 편견을 뿌리 뽑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앞으로는 아시안들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못하는 환경만큼은 조성되지 않겠는가 기대해 봅니다. 미래에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미국의 환경은 피부 색깔이나 부모의 출신 지역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바램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종차별은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작년 폭동 때 어떤 목사님은 사석에서 “깜둥이들은 믿을만하지 못해.”라고 평소의 생각을 말했는데 저는 그분의 인격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다른 인종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도 있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더 낫다는 의식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런 대접을 받으면 못 견디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모습입니다. 아시안들을 향한 증오범죄를 규탄하기 전에 우리가 다른 인종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더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특히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을 삶의 터전에서 매일 연습해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성경의 황금률은 남보다 우리 자신을 먼저 볼 수 있게 합니다.

아멘!

인도네시아 김화수선교사 소식

더 자세한 소식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drive.google.com/file/d/1JG09SFFlRTKD1YMXrH33V22yRcURhNnW/view?usp=sharing

기도제목 : 

  1. 생명이신 주님께 나아와 그분을 날마다 새롭게 만나는 은혜를 부어주시고 새해에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고 새롭게 경험하며 모든 막힌 것들이 풀려지는 역사가 있도록. 
  1. 조국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가 임하여 모든 면에서 회복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부흥케 되는 역사가 있도록. 
  1.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모든 위험에서 저와 은혜의 집 아이들, 그리고 은혜 유치원의 원생들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지켜주시도록, covid19로 인해 모든 학교 일정이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지만, 유치원 원생들을 더 보내주시도록, 교사들이 온라인 수업 교재와 자료를 창의적으로 개발해 나가도록. 실력 있고 충성된 교사가 보충되도록.
  1. 은혜의 집 아이들이 주의 은혜와 십자가의 사랑을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삶과 신앙인격이 성숙해지며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주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사춘기시절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있는데

         주님께서 강한 손과 팔로 붙들어 주시어 주님 말씀과 은혜 안에 굳건히 서도록.

-. 아이들이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도록

-. 모든 일에 진보를 나타내도록. 

-. 모든 아이들이 성실히 공부하고 주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시어 좋은 열매가 있도록.

-. 아이들이 열심히 악기연주를 배워 진보를 이루고 귀하게 쓰임 받도록.

-. 은혜의 집을 위해 충성되고 신실한 소명 있는 사역자를 보내주시도록.

-.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기간 동안 성경암송을 매일 1~2구절씩 하고 있는데, 그 암송말씀이 잊혀지지 않고 마음 판에 새겨지도록(기쁨으로 암송하도록)

  1. 은혜의 집 땅구입 과정에 발생한 민사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래는1월 한달 간 증거제출 및 증인을 세워야 하는 절차를 거쳐 2월 둘째 주 수요일(2/17) 판결 선고를 하는 일정이었는데, 일주일마다 열리던 재판이 2주에 한번 열리게 되고, 또 지난 주에는 법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듯 2주간 법원을 폐쇄 조치하여 다음 주부터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3~4회 더 재판이 진행된 후 빠르면 3월말이나 4월 중순 경에 선고 결판이 있을 듯 합니다. 그 동안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제가 답변서 작성과 변론을  했었는데 최근에 해마다 저희 은혜의 집을 방문하던 검찰청의 검사께서 변호사를 주선해 주어 그분이 저를 도와 앞으로 남은 일정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의 변호사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심을 고백합니다. 

함께 하는 Bobby 변호사에게 지혜를 주시어 재판의 모든 과정을 잘 준비하고 주님 도우심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며 제1심에서 모든 재판이 끝날 수 있도록 관계된 사람들의 마음과 상황을 이끌어 주시도록.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은 재판일정을 잘 대처해 나가도록. 

또한, 재판장이 정직하고 공의로운 판단과 판결을 하도록, 재판을 통해 주님 뜻이 이루어지길 구합니다.

  1. 영육간 회복과 강건함을 위해… 

영적으로, 주님께 온전히 돌이키도록.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도록.

육적으로, 당뇨증상 및 몸의 여러 연약한 부분들을 온전하게 치유해 주시도록.

  1. 혼자 계시는 연로하신 어머님이 늘 강건하심 가운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생을 보내시도록.

한나 전도회 이영자, 김영자, 윤옥정

우리에게도 “가서 제자 삼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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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영목사님 목양칼럼

제가 선교사로 있을 때 현지 지도자의 자질을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했습니다. 선교사에게 와서 돈이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제자들을 눈여겨 보았고 또한 기도의 사람인가를 확인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외부의 도움보다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들은 긴 안목에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에 집중할 때 미래의 난관을 이겨낼 가능성을 가진 것이 입증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급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희생할 줄
알고 헌신의 참된 의미를 알며 인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선교사들이 때론 현지교회 사정도 모른 채 돈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가 현지 교회로부터 거절 당하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선교사들 중에서 돈으로 빠른 시일 내에 건물 짓고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 시급성(?) 때문에 오히려 선교사역을 후퇴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돈으로 세운 사역은 외적으로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나 기초가 없는 건물처럼 재정 지원이 끊어지거나 협력하던 선교사가 떠나 버리면 금방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현지인들에게 하나님을 의존하기 보다는 외부의 재정을 의존하게 하는 것이 돈의 힘입니다. 반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굳건히 세워진 현지 교회는 외부 세력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고 계속 자기
민족 복음화를 이루어 내며 영적으로도 강한 교회로 서게 됩니다.

지금도 선교사들 중에 사람 키우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빨리 건물을 세우는데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키워내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외부적인 평가 점수가 박합니다. 그러나 가시적인 건물과 돈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눈에 보이는 효과가 있으며 더 많은 재정을 모금하기에 수월하기에 여기에 매달리는 선교사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나 학교는 현지인에게는 주인의식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외부의 재정지원으로 지어낸 선교사의 재산입니다. 선교사가 주도적으로 교회를 세우면 그것을 아는 현지 교인들이 헌금을 하지 않으며 현지 목사도 선교사가 월급을 주어야만 일을 하고 선교사 눈치를 보게 됩니다. 이런 교회는 건강하지 못하여 선교사와 연결이 끊어지면 더 이상 관리를 못하고 폐허가 되고 맙니다. 반대로 현지인들이 벽돌 한 장, 시멘트 한 포대씩 헌신하고 자신들의 시간을 들여서 예배당을 세운다면 건강한 교회로 지속되어 더 많은 복음 확장으로 가게 됩니다.

최근에 저는 제가 아는 선교사들의 멘토로서 한 주에 한 번 꼴로 줌으로 연결하여 얘기를 듣고 기도해 주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들 모두가 건물 짓는 사역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 영혼들을 깨울까, 사람을 세울까, 제자를 양육할까에 관한 다양한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도 사람 키우는 일에 모든 시간과 삶을 집중 시켰습니다. 그리고 제자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아셨기에 우리에게도 “가서 제자 삼아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영생교회도 제자를 삼고 제자를 키우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